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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5 제암리 학살 사건’, 잃음과 잊음 그사이 찾음

2024-04-15

앵커: 오늘은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해 자유와 평화를 외쳤던 제암리 주민들이 일본군의 총칼에 학살당한 우리민족 수난의 날입니다.

앵커: 일명, ‘4.15제암리학살사건’의 실체가 세상에 드러나기까지 기독교인의 공헌이 있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잊지 말아야 할 그날의 역사를 박주성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1919년 3월 1일,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한 만세시위가 점차 전국으로 확산됨에 따라 일본의 탄압은 강경해졌습니다.
화성시에 위치한 제암리에서도 종교인이었던 민족 지도자를 중심으로 대한독립을 외쳤고 일본군은 총칼을 휘두르며 무력 진압으로 대응했습니다.

같은 해 4월 15일, 일제의 탄압이 절정에 달했습니다. 일본군이 10일 전, 인근 장터 만세시위를 폭력으로 진압한 것에 대해 사과를 하겠단 명목으로 주민들을 모은 뒤 잔혹한 학살을 자행한 겁니다.

제암리교회에 모인 남성 21명을 향한 일본군의 무차별 총격과 방화. 뒤이어 부녀자 2명과 천도교인 6명까지 사살하며 한날한시에 총 29명의 무고한 조선인 희생자가 발생했습니다.

일본의 만행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세상에 밝혀졌습니다.

[배덕만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
그 사건이 이제 선교사들을 통해서 해외에 알려지게 되면서 이제 일본의 식민통치 자체가 얼마나 포괄적이고 무자비한지를 세상이 알게 되면서 일본이 3.1운동에 대한 보복으로 죄 없는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것으로 판명이 됐습니다

특히 기독교대한감리회 소속 프랭크 스코필드 선교사는 직접 제암리 학살 현장을 취재해 일본군의 만행을 전 세계에 고발했습니다. 일제의 ‘불의와 억압’에 맞서 조선인 곁에서 ‘정의와 자유’를 수호했던 겁니다.

105년이 흐른 지금, 역사학자들은 인류를 향한 폭력과 탄압이 이 땅에 재현되지 않도록 4.15제암리학살사건을 거울 삼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배덕만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
한국 정부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일본이 제압에 사용했던 도구를 방법을 혹시 흉내 내거나 벤치마킹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런 면에서 이 제암리 사건을 한국 사회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안 가고 있는지에 대한 바로미터로 쓸 수 있어야 (될 것입니다)

나아가 힘없는 조선인 편에 섰던 스코필드 선교사의 모습을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그리스도인이 억압받는 자를 위로함과 동시에 부조리한 구조와 계층 문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배덕만 교수 / 기독연구원 느헤미야 원장]
조선이 일본에 의해서 무지막지하게 두들겨 맞고 억울한 죽임을 당할 때 스코필드처럼 그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의 목소리가 되어주고 그들의 든든한 보호망이 돼주는 역할을 한국교회가 계속해서 놓치지 않고 온전하게 행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된다

CTS뉴스 박주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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