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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종교개혁!] CTS칼럼 - 충정교회 옥성석 목사

2019-10-10

안녕하세요 저는 충정교회 옥성석 목사입니다. 우리가 10월을 보내고 있는데 10월하면 누구나 다 종교개혁을 떠올립니다. 아마 마틴 루터 때문일 것입니다 그가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그 대성당에 95개조의 항의문을 내건 그날 그날을 우리는 종교개혁의 시발점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후세 사학자들은 루터에게 모든 공로를 돌리는 것에 대해 난색을 표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이미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있는 어떤 분위기 숙성이 마련되어 있었기 때문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독일의 정치상황 카톨릭의 부패 면죄부 판매 이런 모든 요건들이 종교개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루터 외에 우리는 칼빈 츠빙글리 같은 이들의 종교개혁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츠빙글리는 1484년 1월 1일 스위스 동부에서 태어났습니다 그후에 그는 바젤대와 비엔나대를 졸업한 후에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그가 목회를 하면서 그는 마태복음을 쭉 강해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과 디모데전서 같은 책을 계속 강해해 나갔습니다. 이러한 그의 설교방법은 당시 교회력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전하던 기존 사제들과는 전혀 다른 신선한 방법이었습니다. 뿐만아니라 츠빙글리는 항상 문제의식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았습니다. 사순절에 소세지를 먹었다는 죄명으로 어려움에 처한 한 인쇄업자가 있었는데 그를 변호하는데 적극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금식에 대해 교회법이 불일치 하다는 것을 주장했습니다. 독신제도가 성경적이 아니라는 것을 그가 설파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성경의 권위만 인정하는 그런 자세를 취하며 사역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그가 교회에서 뛰쳐나왔습니다. 그는 취리히 대성당의 사제직까지 사임을 합니다 그리고 1523년 1월 29일 600여명의 청중들 앞에 과감하게 섭니다. 그가 서면서 가지고 나왔던 논제는 67개 조항이었습니다 이 조항을 가지고 시의회를 설득하기 까지 합니다. 그의 67개의 조항은 루터가 말한 95개 조항과 맞먹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일들을 통하여 그는 스위스의 수도원이 해산되도록 하고 결혼법령이 공표되도록 하고 또 많은 사회적 개혁들이 이뤄지는 일에 일임을 감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츠빙글리의 개혁을 오늘 이시대의 우리가 본 받아야 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어려운 이 시대에 우리 크리스천들이 교회 안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교회 밖으로 나가 오늘 문제를 안고 진통하고 있는 청중들과 함께 하며 그들의 고난과 그들의 아픔에 진정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뜻을 이뤄나가기 위해 힘 쓰는 자 되야 할 줄 믿습니다. 지금까지 CTS칼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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