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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TS 연중기획 장로교 100년을 찾아가다

2012-10-02



앵커 : 평양과 서울에 이어 미국 장로회의 선교거점이 됐던 경남 대구, 대구지역에는 선교는 물론 교육과 의료 등 대구시 역사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대구제일교회가 있는데요. 100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대구제일교회가 최기영기자가 찾아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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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 조선시대 전국 제일의 한약재 시장이었던 대구 남성로의 약령시장, 1893년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경북지역 순행에 나섰던 배위량 선교사가 골목 한 편 한약재상들에게 전도지를 나눠주면서 대구에 첫 복음의 씨앗이 떨어졌습니다. 이 후 배위량 선교사의 처남인 안의와 선교사가 초가 5동 20여간에 예배당을 세우면서 대구제일교회는 영남의 모교회가 됐습니다. 겉모습도 말투도 이상하게만 여겨졌던 당시 사람들에게 안의와 선교사가 보여 준 겸손함과 따뜻한 마음은 이 지역에 복음이 스며들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김원도 장로 / 대구제일교회
나무에 선교사님의 귀가 걸려서 찢어졌어요. 그래서 피를 줄줄 흘리고 계셨죠. 그런데 나뭇꾼 앞에 가서 공손히 절을 하면서 “제가 주의를 기울이지 못해서 걱정을 끼쳐 죄송합니다” 이렇게 얘길 하니까 온 주민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대구제일교회를 중심으로 한 사역은 선교 뿐 아니라 교육과 의료 등 대구 지역을 거듭 성장시키는 도화선이었습니다. 존슨 의료선교사가 교회 초가집에서 시작한 의료원은 1899년 10월 미국 북장로파의 제중원 설립으로 이어지며 동산의료원의 모태가 됐습니다. 또, 안의와 선교사의 사택을 임시교사로 창설된 계성학교는 영남지방 최초의 중등교육기관으로 기독 인재의 양성소가 돼줬습니다.

김원도 장로 / 대구제일교회

1933년, 고딕양식의 간결한 붉은 벽돌로 지어진 세 번째 예배당은 당시 한강 이남에서 가장 큰 교회 건물이었습니다. 남문안예배당, 대구읍교회, 제일예배당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이어진 대구제일교회의 사역은 약령시장 입구에서 묵묵히 섬김의 역사를 이끌어왔습니다. 동산동 234번지인 현 위치에 동산위의 우뚝 선 교회를 건축한 뒤에도 약한자를 일으키고, 소외된 이웃을 찾아 사랑의 손길을 전하는 전통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박창운 목사 / 대구제일교회 13대 담임목사

119년이라는 복음의 역사가 이어지는 동안 성경중심의 도덕적인 생활을 철저하게 지켜 온 전통 또한 교회와 성도들이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주춧돌이었습니다. 음주와 거짓증거, 가정불화 등 부도덕한 생활을 바로잡기 위해 당회를 모아 징계하기도 하고 기도도 해주면서 예배당은 법도와 사랑이 함께하는 공간이 됐습니다. (CH2 음악 IN) 선조들이 후손에게 전승해 온 아름다운 신앙은 오늘까지도 대구 지역을 구원의 방주로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최성해 권사(90세) / 대구제일교회
대구 도성에 죽어가는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는 구원의 방주가 되게 해달라고 매일 아침마다 기도하는데 조건없이 사랑할 수 있는 교인들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창운 목사 / 대구제일교회 13대 담임목사
CTS 최기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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