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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선교의 지평 열다 - 윌리엄 데이빗 레이놀즈 선교사

2012-09-05

앵커: 올해는 한국장로교 총회가 설립된 지 100주년이 되는 해인데요. 이보다 20년 앞선 1892년 한국으로 파송돼 한국장로교 치리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한, 레이놀즈 선교사의 무덤이 최근 발견됐습니다. 한국 장로교의 기틀을 마련하며 복음전파의 초석을 닦았던 레이놀즈의 선교사역을 김인애 기자가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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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묘비도 없이 무성한 잡초 속에 외롭게 자리 잡고 있는 이 무덤의 주인공은 바로, 윌리엄 데이빗 레이놀즈 선교사. 미국 남장로교에서 1892년 한국에 파송된 레이놀즈 선교사는 한국인들에게 이눌서란 이름으로 불리며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1893년 한국 장로교의 첫 치리회인 장로교선교부공의회 초대 회장을 시작으로 장로교공의회와 조선예수교장로교노회, 그리고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설립에 이르기 까지 한국 장로교 치리회 구성 작업에 참여했습니다. 또한 ‘12신조’라고 알려진 한국장로교회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는 등 레이놀즈 선교사는 한국장로교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양국주 대표 / NGO 열방을섬기는사람들

1917년 거처를 평양으로 옮긴 레이놀즈 선교사는 1937년 조선에서 은퇴할 때까지 평양신학교 조직신학 교수로 활동하며 후학양성에도 힘썼습니다. 당시 레이놀즈 선교사의 제자였던 방지일 목사는 그와 함께 했던 순간을 회상하며 “곧은 인품과 한국선교에 대한 열정을 가진 분이었다”고 전했습니다.

방지일 목사 / 영등포교회-----------말자막
이눌서(레이놀즈 한국이름) 같은 신사는 없어요. 모든 예의가 바르고, 한국의 유교적으로는 양반이죠. 꼼짝없이 자기의 책임을 다한 걸 보면 한국 기독교에는 아마 큰 공헌을 했다고 보죠.

레이놀즈 선교사는 성경번역가로서도 큰 역할을 했습니다. 1895년 성경번역위원회 남장로회 대표로 선임된 그는 게일 선교사와 함께 한글성경번역에 참여했습니다. 예레미야를 제외한 구약성경 38권과 신약성경의 고린도전‧후서 등 모두 40권을 번역하며 복음전파의 초석을 닦았습니다.

양국주 대표 / NGO 열방을섬기는사람들

한편, CTS는 개신교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연구해 온 NGO 열방을섬기는사람들의 양국주 대표를 초청해 레이놀즈 선교사 등 조선 초기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을 추석특집 ‘삶이 변하는 시간 25’에서 마련했습니다.

120년 전, 낯선 한국 땅을 찾아 한국선교와 성경의 기틀을 마련한 레이놀즈 선교사. 그의 용기와 헌신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CTS 김인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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