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크기조절
글자색상조절
배경색상조절

뉴스방송

현재 뉴스

6월 호국보훈의 달 기획 - 영원한 청년 월남 이상재 선생

2010-06-18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기독인물을 조명해보는 시간인데요. 오늘은 일제 강점기 선교와 교육, 농촌계몽운동으로 민족에 희망을 심어주었던 월남 이상재 선생을 회고합니다. 특별히 이상재 선생은 '영원한 청년'으로 불릴 만큼 청년들을 사랑했다고 하는데요. 송주열 기잡니다.
---------------------------------------------
월남 이상재 선생이 하나님을 만난 한성감옥, 선생의 눈은 결연한 의지로 빛납니다.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에 YMCA야구단과 함께 참가해 시구하며 청년들과 함께 있는 월남의 모습이 행복해 보입니다.

INT 이학규 / 이상재 선생 증손자
늙으셨어도 젊은이들을 좋아하시고, 늘 젊은이들을 상대하시고,...내가 젊은이를 따라가야지 젊은이보고 늙은이 되라고 할 수 있느냐

이상재 선생은 1850년 구한말 충남 서천 가난한 선비 가문에서 태어났습니다. 선생의 삶을 관통하는 파란만장한 조선 말기와 일제 강점기는 어쩌면 숙명이었는지 모릅니다.

이상재 선생은 1884년에 우정국의 주사로 첫 관직에 등용 됩니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치지만, 인생의 추는 국운을 바로 세우기 위한 민족운동에 집중됐습니다. 1896년에는 자주독립을 지키고자 서재필, 남국억 등과 함께 독립협회 창립을 주도했습니다. 또, 만민공동회를 열어 자주외교와 국정개혁을 정부에 호소하고, 근대국가 수립을 위한 의회설립운동을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은 수구세력의 모략으로 한성감옥에 3년 동안 수감되고 부텁니다. 이 상재 선생은 이 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됩니다.

INT 김명구 교수 / 서울 장신대

STD 1903년 기독교로 회심한 이상재 선생은 YMCA에서 국권회복을 위한 기독 청년 인재양성을 시작하게 됩니다.

그가 기독교에 입교한 나이는 55세. YMCA한국인 최초 초대 총무로 청년운동을 시작한 선생은 생을 마칠 때까지 청년들에게 물산장려운동, 절제운동, 전도운동, 농촌계몽운동을 진두지휘했습니다. 특히, 반상의 구분이 없는 만민평등 사상을 주창하면서 구국, 근대화의 요람으로서 YMCA를 성장시켰습니다.

INT 김명구 교수 / 서울 장신대

1927년 3월 27일. 선생의 마지막 가는 길에는 3.1운동이후 흩어졌던 민족운동 지도자들이 함께 하는 등 한국 최초 사회장으로 치러졌습니다. 영원한 청년 이상재 선생 탄생 160주년인 올해 선생의 나라사랑, 청년 사랑, 하나님 사랑의 정신을 되새겨 봅니다. CTS송주열입니다.
DVE 영원한 청년 ‘월남’
1903년, 한성감옥 (장소자막)
1920년, 전조선야구대회 (장소자막)
INT 이학규 / 이상재 선생 증손자
늙으셨어도 젊은이들을 좋아하시고, 늘 젊은이들을 상대하시고,...내가 젊은이를 따라가야지 젊은이보고 늙은이 되라고 할 수 있느냐
1850년, 충남 서천 출생
관직보다는 민족운동에 전념
1896년 '독립협회' 창립 주도
자주외교·국정개혁 운동
1903년, 한성감옥에서 기독교 입교
INT 김명구 교수 / 서울 장신대
STD 송주열 기자 (jysong@cts.tv)
청년 대상 절제·전도·농촌 운동
INT 김명구 교수 / 서울 장신대
1927년, 한국 최초 사회장 장례
영상취재 전상민
최병희
홈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