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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린튼 선교사 -선교•봉사로 한국사랑 실천(네,광주)

2010-03-02


3.1절 기념식에서 정부로부터 건국훈장을 받은 고 윌리엄 린튼 선교사. 그는 대전 한남대학교 설립자로 한국의 교육선교 뿐 아니라 독립운동 공적을 인정받아 건국훈장에 추서됐는데요. 신미정 기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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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1912년 한국에 발을 딛은 윌리엄 린튼은 한국인들에게 인돈 이란 이름으로 불리며 충정·호남지역에서 영어와 성경을 통해 복음을 전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 시절에는 독립운동을 지지하며 국제사회에 3.1운동의 실상을 알렸고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할 당시에는 신사참배를 거부해 1940년 본국으로 추방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해방 후 한국에 다시 들어와 대전 한남대학교를 설립하고 1960년 타계하기 두 달 전까지 한국 교육선교를 위해 활동했습니다.

SOT 제 91주년 3.1절 기념식 건국훈장상 수여식
"(상패 낭독)건국훈장 애족상 윌리엄 린튼. 차남 유진 린튼에게 수여됩니다."

장인인 유진벨 선교사로부터 손자인 세브란스병원 소장 인요한 박사까지 4대에 걸쳐 이어온 한국사랑이지만 이를 지키기 위해 당했던 일제시대의 수난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INT 유진 린튼(86세)/윌리엄 린튼 차남
"1937년 전주 신흥학교 교장시절, 일본이 신사참배를 강요했지만 아버지(윌리엄 린튼 선교사)는 확실히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고 그러면서 학교를 폐교하게 됐습니다. "

세상을 떠난 지 50년 만에 한국정부로부터 그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족상을 수상한 윌리엄 린튼 선교사. 백발의 아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아버지를 떠올립니다.

INT 유진 린튼(86세)/윌리엄 린튼 차남
"매우 기쁘고 감사하고 아버지께서도 너무나 감격스런 상일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 풍토병을 피해 아버지와 함께 올랐던 노고단을 찾은 윌리엄 린튼 선교사 가족들은 전쟁과 오랜 세월로 인해 터만 남은 예배당을 바라보며 한국에서의 추억을 회상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한국사랑으로 심겨진 선교밀알들이 큰 결실로 이어지길 기도합니다. cts 신미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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